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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계님 글_금척(金尺) 추적_5편_금척과 칠보산(七寶山)
전 4편에 이어 계속
“선도성모(仙桃聖母)와 혁거세(赫居世)가 고조선의 금척(金尺)을 어찌 변화시켰고, 그것이 역사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에 대한
이러한 추측은 부도지(符都誌) 추기(追記)에서
그 다음 금척(金尺)에 대해서 언급을 통해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원문(原文)]
據史錄則神人 授金尺於赫居世 王微時 曰持此金尺 以正金甌云 一說則金尺玉笛 出於七寶山
傳於赫居世王云 七寶山 寧海之名山 白頭山下明川府 又有七寶山 未知何山 若後者則此必昔世之事
[해석(解釋)]
역사 기록에 의하면,
‘혁거세 왕이 ‘왕위(王位)에 오르기 전(=미(微)’에 신인(神人)으로 부터 금척(金尺)을 받았는데,
(그 신인(神人)이) 말하기를 “이 금척(金尺)으로써 금구(金甌)를 바르게 하라.”고 하였다고 말해진다.
일설(一說)은 “금척(金尺)과 옥적(玉笛)은 칠보산(七寶山)에서 나왔는데,
(이것이) 혁거세(赫居世) 왕(王)에게 전해졌다.”라고도 말해진디.
칠보산(七寶山)은 영해(寧海)의 명산(名山)이다.
백두산(白頭山) 아래에 명천부(明川府)에 또 칠보산(七寶山)이 있으니 어느 산인지 알수 없다.
만약 후자(後者)라면, 이는 반드시 ‘오래 전(前) 세상(世上)의 일이다.
(의미해설)
여기에 금척(金尺)의 유래(由來)가 말해지고 있는데,
이 금척(金尺)은 혁거세(赫居世) 왕(王)에 의해서
‘북부여가 관할하는 소도(蘇塗)’에 표준(標準)으로 삼게 한 금척(金尺)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선생께서는
이 ‘표준(標準)으로 뭇 소도(蘇塗)의 해척지모(海尺之母)에게 공급된 금척(金尺)’을
영해(領海) 박씨(朴氏)의 시조(始祖)이자, 박제상(朴提上)의 가문(家門)에 내려오는 것을 친견(親見)하시고,
그 구조와 치수(値數)를 밝힌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금척(金尺)은
“오직 ‘하나’만 있는 금척(金尺)이 어찌해서 박혁거세(朴赫居世)께 전(傳)해졌는가?”는 것을 논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금척(金尺)’을 견본(見本)으로 해서
‘최대한 효과를 근접하게 하는 표준(標準)금척(金尺)’을
박혁거세 왕께서는 창안(創案)해서
이를 ‘북부여’에 헌상(獻上)하여 ‘모든 소도(蘇塗)의 표준’으로 삼게 하였다고 볼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밖에 없는 금척(金尺)’은 신인(神人)이 혁거세(赫居世)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신인(神人)이 도대체 누구냐?”
좌계가 볼 때에는 혁거세 왕의 모친(母親)이신 선도성모(仙桃聖母)이십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선도성모(仙桃聖母) 수희불사(隨喜佛事)>를 보면
선도성모께서는 진평왕(眞平王)에 이를 때까지
‘신력(神力)을 발휘해서’ 꿈에 등장해서 “사찰(寺刹)을 지을때 ‘어디를 파면 황금(黃金)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등
’죽지않고‘ 신인(神人)으로 활동하는 모습이 기재(記載)되어 있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이는 ‘딱 하나 밖’에 없는 금척(金尺)을
결국 선도성모(仙桃聖母)께서 만들어서 자신의 아들에게 전하면서
“이 금척(金尺)으로써 금구(金甌)룰 구(救)하라.”는 사명감(使命感)을 주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금구(金甌)는 물론 지구(地球)자체를 뜻합니다.
그런데,
‘딱하나 밖에 없는 금척(金尺)’의 또다른 유래를 적고 있는데,
그것은 칠보산(七寶山)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중요한 것은
‘표준(標準)인 금척(金尺)’의 재질(材質)이 ‘금속(金屬)’으로 되어 있어서 양산(量産)할수 있음에 비해서,
‘딱하나 밖에 없는 금척(金尺)’은 그 재질(材質)의 대부분이 옥(玉)으로 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칠보산(七寶山)은 ‘칠보(七寶)가 나는 산’을 의미하는데,
칠보(七寶)는 불교 경전(經典)에서 언급되는데,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략은 같은데,
‘법화경수기품’에서는
① 금(金),
② 은(銀),
③ 유리(琉璃),
④ 차거(硨磲),
⑤ 마노(瑪瑙),
⑥ 진주(珍珠),
⑦ 매괴(玫瑰)등으로 합쳐져서 말든어진 것을 말합니다.
(法華經受記品曰:「金、銀、琉璃、硨磲、瑪瑙、真珠、玫瑰七寶合成。」)
즉 칠보(七寶)는
금속인 금(金)과 은(銀) 이외에는 ‘조개’와 ‘옥(玉)’ 종류가 더 포함되는 것입니다.
칠보산(七寶山)은 결국 이런 ‘칠보(七寶)가 나는 산(山)’을 의미하는데,
매월당(梅月堂)께서는
“오늘날 경상북도 북쪽 해안가 끝에 칠보산(七寶山)이 있고,
또 백두산(白頭山)의 남쪽에 있는 명천부(明川府)의 칠보산(七寶山) 둘중에 하나인데,
어느 쪽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하고 계시지만,
은연중 백두산(白頭山)의 칠보산(七寶山)에다가 그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백두산(白頭山)이 폭발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해방(解放) 후입니다.
백두산 폭발이전의 지리(地理)는 그 이후의 지리(地理)와 전혀 다를수 밖에 없는데,
좌계가 볼때에는 칠보(七寶)가 나는 것은 백두산 남쪽으로 흐르는 소위 적택수(赤澤水)가 용암(鎔巖)에 의해서 묻혀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깊은 강’이 있고, 화산(火山)의 열(熱)에 의해서 신비한 돌(石)과 ‘조개’들이 많이 있는 이 적택수(赤澤水)부근에 있었고,
이를 고대에 칠보산(七寶山)이라고 불려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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